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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장소와 인간

 

 

과거의 예제들을 가져와서 특별한 모습으로 번안했을 뿐이다. 프랑스의 님Nimes에 자리한 공공주택 '네모 쉬 Némausus, 1985-1987'도 유사한 사례다. 장 누벨jean Nouvel이 계획한 이 집합주택은 보편적인 공공주택의 모습을 상당히 벗어난다. 도판7 금속성 재료 와 단순 명쾌한 형태가 풍기는 공업적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과거의 선례를 본질적 으로 벗어나지는 않는다. 두 동의 판상형 주동은 진부한 구성이지만 건축가는 여기에 알루미늄 으로 옷을 입혀 여객선과 비행기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사람들이 기존에 가졌던 사회주택의 이 미지는 불식되었고 건물은 기념비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장 누벨은 “빛, 공기, 공간을 충분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음을 밝히며 이십세기 초반의 건축가들이 가졌던 공공주택의 계획 목 표와 동일함을 강조했다. 건축가는 건물의 구성을 단순하게 하고, 재료를 표준화하고, 계단을 건물의 외부에 설치함으로써 건설 비용을 최소화했다. 도판 8 군더더기를 모두 빼 버린 것이다. 그 러면서도 두 주동 사이의 공간은 '광장'으로 재현했다. 매우 현대적인’ 이 집합주택은 과거의 속성과 미래의 비전을 동시에 담고 있다. 장소로서의 인식 바람직한 주거환경은 거주자들에게 '장소'로 인식되는 곳이다. 규모의 크고 작음과는 관계없으 며, 단독주택이든 집합주택이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장소가 인간의 진정한 '거주dwel'와 관련되 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거주'의 어원은 평화로움in peace' 인데, 독일어의 '평화rieden'는 영어에서의 자유freedom'와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장소는 인간이 진정한 '거주'를 영위하는 곳이며 '자유'를 향유하는 곳이다. 환경 속에서의 '자유'는 여기저기 마음대로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곳에 머물면서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을 얻는 것이 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 환경에나 머물거나 속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진솔한uthentic' 환경에 만 머물려고 한다. 환경이 가식적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없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곳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머물지 못하는 인간은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얻지 못한 다. 떠도는 인간은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사는 인간은 그곳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 환경은 '내 마음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한다. 그런 곳이 '장소'로서 인간 존재의 뿌리가 되는 환경이다. 그런데 졸속하게 만들어진 환경이 늘어감에 따 라 장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정한 환경에 애착을 가지거나 그곳에 속하려는 사람들은 줄 어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환경을 아끼지 않게 되었고, 그곳으로부터 정을 떼어 버렸다. 나만의 장소가 없는 인간은 이곳저곳을 떠돌고, 정말로 아름다운 장소를 보 기 위해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집합주택이 장소가 되려면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첫째, 진솔한 태도로 정성을 다해 만든 주거환경만이 장소가 될 수 있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진정성과 진솔함이 결여된 주거환경을 '비장소적인 placeless 환경'이라고 규정했 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진정성과 진솔함으로 조성한 환경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인해서 그러한 환경들은 마구 사라져 버렸다. '비장소적인 환경'이 우위를 점하는 불행한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오늘날 우리 도시와 농촌에 산재하는 대 규모 집합주택들은 대부분 '비장소적인 환경'이다. 단순한 사고를 바탕으로 졸속으로 지어진 집합주택은 인간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없다.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관료주의가 주도하고, 오로 지 경제성을 바탕으로 지어져서 결국은 사고팔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한 주거환경일 뿐이다. 결 국 미래에는 이 모든 비장소적인 성격이 제거된 주거환경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상징성과 공유의 가치가 존재하는 집합주택이 장소로 인식된다. 근대건축가들은 새로 운 미학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키면서 건물을 단순화시키고, 장식을 배제하고, 집합주택에서 상징성을 없애 버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집합주택은 의미를 상실한 채 기계적 환경으로 전락 했다. 이십세기 초반 미헐 데 클레르크가 에이헌 하르트 집합주택에서 보여 주었던 표현주의나 브루노 타우트가 베를린의 말굽형 단지에서 보여 주었던 상징주의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집합주택 거주자들은 어떤 가치도 공유하지 못한다. 그런데 장소로 인식되는 집합주택에는 주민들 모두가 아끼는 공간, 상징물, 역사적 흔적 같은 것이 있다. 이를 통해 주민 들은 정서, 지식, 정보, 이야기 등을 공유함으로써 집단적 기억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