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주택은 주민들이 공동의 기억과 체험을 쌓아 가는 풍요로운 생활공간이 되어야 한다. 도판 9 셋째, 특별하고 매력 있는 집합주택이 장소로 인식된다.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미학적으로 우수한 집합주택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뿐만 아니라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틀에 박힌 건물,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집합주택이 각각 특별함과 나름의 매력을 가진다면, 거주자는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어떤 환경을 선택해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노르베르트 슐츠에 의하면, '자유'를 누리는 인간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환경에서 어느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이다. 10 나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선택한 환경은 만족감을 준다. 나는 그러한 환경을 사랑하고 아낀다. 도시와의 유기적 관계. 집합주택은 원칙적으로 도시 주택이다. 도판 10 그런데 집합 주택이 도시 속에 어떻게 자리하는 것이 좋은가는 늘 의문이다. 근대 이후 새로운 형식의 집합주택이 등장하면서 주기환경이 도시에 자리하는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러한 변화는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로 귀결되었다. 르코르뷔지에를 위시한 근대건축의 선구자들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집합적 주 거 환경을 도시에 도입하는 방법론에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들은 도시에 남아 있는 기존의 주거환경들이 대부분 위생과 공간 질서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으므로 모두 없애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된 도시 속에 집합 주택 집어넣기 작업은 많은 경우 '고립'과 '홀로서기'로 귀결되었다. 르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에 건립한 집합주택 '위니 테가 주변 환경과 고립되어 홀로서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집합주택이 도시에 자리하는 방식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로서 두드러지게 인식되는 방식과 드러나지 않는 '도시의 일부'로 인식되는 방식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프로젝트 노 두드러진다는 것은 주변 환경과 물리적 시각적으로 유리되고 건축적으로도 독자적인 모습을 가지는 상태다. '도시의 일부'로 인식되는 것은 주변 건물들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자리하여 주변 환경과 차별되지 않거나 미세하게 달라서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둘 다 자연스럽지는 않다. 문제는 특정 프로젝트가 시각적으로 매우 두드러지는 동시에 주변 환경과 공간적으로 유리되어 섬처럼 고립되는 경우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 들 어선 아파트 단지들이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자리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다. 아파트 단지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고립된 '프로젝트'들의 집합이다.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담장으로 주변과 격리돼 고 지정된 입구로만 출입한다. 단지는 개발 단위이면서 생활 단위이자 관리 단위다. 모두 도시의 섬'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도시 들은 파편적인 생활의 단위가 물리적으로 모여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공간적 격리는 당연히 사회적 격리로 이어진다. 고급 단지는 서민 단 자기들과 대립적으로 존재하고, 마치 하나의 공동 결사체처럼 주변과 갈등하면서 배타한다. 고급 단지들은 생활편의시설을 경쟁적으로 고급화하면서 다른 단지들과 차별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가 하나의 공 동체로 인식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예견되는 주거환경의 상은 암울할 뿐이다. 10, 주택과 도시의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대체로 분리된 개발을 선호한다. 경쟁이 심한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변과 구분되면서 특별한 이미지로 주목받는 베를린의 도시 모델, 자세다니 플러스 주변 일대를 보여준다. 집합주택이 분양에 유리하다. 공간적으로 격리된 단지는 '보호된 구역'으로 인식되고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으므로 소비자들에게 선호되는 것이다. 11 따라서 민간이 도시에 집합주택을 개발할 경우,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고 주변과 격리된 계획을 하려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반대로 새로운 집합주택이 주변과 너무나 유사해서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이 독자성과 개체성이 없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건축이론가 피터 로는 새로운 집합주택이 주변과 이웃하기에 적절한 상태를 가리켜 '거친 연속성 rough continuity'라고 규정했다. 새로운 건물이나 단지의 규모와 성격이 주변과 유사하면서도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인 균형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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