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은 건축가들이 계획한 많은 집합주택이 주변 환경과 ‘거친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도시에 들어섰다. 1920~1930년대에 건축된 집합주택 중에 그런 사례가 많은 편인데 1926년 에른스트 재킷이 계획하여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건설한 '니데라트 단지 Siedlung Niederrad'가 대표적이다. 도판 몸체를 이루는 건물은 ᄆ자형의 블록형 집합주택인데, 중정과 길을 향해 톱니 모 양으로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건물의 표면은 독자적이고 차별적이지만 주변 환경과 이질적이지 않다. 미 헐 데클레르크가 설계한 '에어컨 하르트만 집합주택 역시 모습은 두드러지지만 건물의 형식, 전체적인 형태, 사용된 재료의 측면에서 주변 건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건 주변과 다르게 보인다면, 건물의 외부 벽면 처리 방식과 그곳에 적용된 여러 장식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런 측면이 주민들이 건물에 애착심을 가지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주민들은 그곳을 살기에 바람직한 장소로 인식하게 된다. 집합주택이 '프로젝트'로 인식되는 것은 주거 유형이 갑자기 변화하기 때문이다. 저층 단독 주택이 밀집한 곳에 느닷없이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3, 4층의 타운하우스가 이어진 곳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경우다. 집합주택이 외양적으로 튄다 해도 주변 건물들과 유형적으로 유사하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에어컨 하르트만 집합주택의 경우 건물의 외관은 특별하지만 적으로는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데클레르크 이후에 확 동한 일부 건축가들은 그의 건물이 유형적으로 너무 일반적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이었다. 결국 특정한 지역에 형성된 주거환경이 유형적으로 일관된다면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은 주변과 완전하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또 한 어떤 변화가 발생한다 해도 유형적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진행되어야 한다. 도시가 일정한 구성적 법칙을 바탕으로 변해 갈 때 그 도시는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조직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블록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도시적 건축의 완결 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블록의 규모가 작고 가로에 접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 확보와 커뮤니티 형 성에 유리하다. 따라서 미래의 집합주택은 블록을 존중하면서 가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도 블록형 또는 연도형도 집합주택이 적극적으로 채용되고 있다. 그러한 주거 형식은 가로의 표면적인 연속성을 강조하므로 도시 일부로 인식돼 는 데 제격이다. 또한 블록에 새롭게 들어서는 건축은 이미 주변에 자리하는 건물의 성격을 존중하고 그 구성적 원리에 따르게 되어 있다. 도시설 계가 에드먼드 베이컨 Edmund N. Bacon은 이런 태도를 '둘째 사람의 법칙 principle of the second man'이라고 규정했다. 13 이런 협력적인 건축작업이 이어진다면 미래에는 도시와 유리되는 집합주택이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12. 블록을 이루면서 가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베를린의 도시주택. 2014년, 보 L LE 그 단위주택의 개별성과 변화의 가능성 많은 사람을 위해 대량으로 짓는 집합주택에서 개인의 취향과 요구는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집합주택에서 개인의 요구와 개별성의 표현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1920~1930년대에 건축된 집합주택에서는 중요한 이슈였다. 예를 들어 브루노 타우트가 베를린에 계획한 집합주택을 보면 건물의 요소요소에 다양한 색채가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말굽형 주거단지'로 그는 그곳에 거주하는 노동자 가족들이 각자의 주택에 부여된 고유한 색채를 통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가지기를 바랐다. 값싸게 짓는 집합주택이지만 각 주택이 최소한의 개별성을 가지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져서 갔고, 제이차세계대전을 전후해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몇몇 건축가들에 의해서 그 이슈는 다시 조명받게 되었고 여러 방법이 실험되었다. 제이차세계대전 이후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건축이론가 존 허브 라커룸은 John Habraken 이었다. 그는 1962년에 발표한 후원 이론 support theory'를 통해 집합주택에서 단 위 주택의 개별성과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4 하브라컨은 네덜란드 곳곳에 들어선 균일하고 표준화된 주거환경이 인간과 환경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저해한다고 판단하고, 개인의 요구가 존중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했다. 도판 3 우선 집합주택의 구성요소를 둘로 구분했는데, 하나는 주거 dwelling'으로서 개인의 생활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후원'로서 시공자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서비스와 기반시설이다. 개인의 공간이 변화하면 당연히 전체 건물도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한 하브라컨은 인간의 주거는 '과정'이라고 규정했으며, 결코 고정된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지속해서 제기했다. 하브라컨의 이론은 네덜란드 구조주의 건축가들의 실제 작업으로 이어졌고, 가변성'과 '변화'의 방법론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헤르만 헤르츠베르허르가 1971년 델프트에 지은 디 이혼 실험주택은 '계속 변화하는 상태'를 표방한 초기 사례였다. 건축가가 전체 건물과 각 단위주택의 기본 틀을 제공해 주면 나머지는 거주자가 공간을 만들어 가는 집합주택으로 당시로써는 과감한 '실험'이었다. 도판 14 거주자는 공간의 숫자, 크기, 기능 등을 스스로 결정했다.
'건축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양열에너지 등 재생에너지와 건축 (0) | 2021.06.13 |
---|---|
아끼고 보존하는 재료를 사용하는 주택 (0) | 2021.06.13 |
집합주택과 주민의 기억 (0) | 2021.06.13 |
장소와 인간 (0) | 2021.06.12 |
역사성과 미래 비전을 동시에 담는다 (0) | 2021.06.12 |